 | 붉은 손가락 -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
붉은 손가락
-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
히가시노 게이고의 명성은 많이 들어봤지만, 정작 책으로 읽게 된 것은 바로 이 작품이 처음이었다. 2007년 최신간이라고 소개되는 『붉은 손가락』은 분명 작가의 최고작은 아닐지라도 분명 원숙한 재미를 느끼게 해줄 거라 기대됐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난 뒤에 느낌은 범죄를 해결하는 통쾌한 재미보다는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주로 살인이 이야기되는 추리 소설이 마냥 재미있을 이유도 없지만, 그동안 읽은 추리 소설이나 만화는 일종의 퍼즐을 푸는 재미를 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추리보다는 인물들과의 관계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47세의 중년가장 아키오는 어느 날 아내에게 어서 빨리 집에 오라는 전화를 받는다. 집에 온 아키오의 눈앞에 있는 것은 정원에 놓인 검은 봉지로 쌓인 여자애의 시체. 범인은 누구인가, 는 중요하지 않다. 중학생에 다니는 아들 나오미가 우발적으로 벌인 사건. 여기서 처음으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어째서 자식이 저런 식으로 자랐던 건가. 왜 저렇게 방치한 건가. 아키오는 많은 고뇌를 느끼고 고통을 당하지만, 결국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자기가 가정에 신경 쓰지 않았고 야에코에게 맡긴 채 도피만 했기 때문에 현실이 일그러져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아키오는 아내의 설득을 받아들이고 시체를 유기하기로 결정한다. 골판지에 시체를 넣어 자전거로 공원 화장실에 버리고 온다. 다음 날, 경찰은 시체를 발견하고 수사에 들어가게 된다. 뛰어난 추리력을 가진 가가 형사는 금세 이들 가족을 주목하고 수사에 들어간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먼저 떠오른 소설 중 하나는 행복한 책읽기에서 출판한 작가의 발견 시리즈 첫 번째 출간작인 『시소 게임』이었다. 아토다 타카시의 열다섯 편의 추리 단편을 모은 단편집인데 기발한 범행들이 많이 나온다. 단편 분량이라 주로 사건의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의 범행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단편들이었다. 가족들이 범행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연상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게다가 첫인상을 주었던 이 소설집에 실렸던 첫 번째 단편인 「사망진단서」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짧은 단편이 아니고 한 권의 장편이기 때문에 범행을 계획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뒤에 옮긴이의 글을 읽으니 원래 단편으로 쓰인 것을 수정하여 개작한 작품이라 하니 단편 같다는 느낌이 당연했다는 생각을 했다. 확실히 짧은 이야기를 늘린 느낌도 들었다. 그러나 반대로는 짧은 이야기로는 이 책에서 느낀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테니 적당한 개작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유능한 형사 가가는 금세 수사망을 좁힌다. 그리고 사건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반인륜적인 범행이 벌어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숨겨진 진실을 가족 스스로 토해내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 아들의 범행을 보호하기 위해서 치매인 어머니를 범인으로 모는 무정하고 잔혹한 아키오가 끝내 오열을 터트리며 진실을 말하는 장면에서 답답했던 가슴이 안도를 얻게 된다.
소설이 단지 이런 식으로 끝났다면 큰 감흥을 받지 못했고 실망했을 것이다. 불편한 소재를 다루고 답답한 나오미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켜 짜증만 일으키는 소설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키오 가족 말고도 가가 형사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있고 사건이 끝난 직후에는 가가 형사의 이야기도 끝맺어 주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단지 답답하게만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충격적인 반전과 감동을 전해준다. 반전이 좀 당황스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예상 못했던 범위도 아니었기 때문에 뜬금없다는 느낌은 없었다.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역시나 절절하고 화나고 애통한 이야기였다. 본편의 내용이 서글프고 슬프기만 한 내용이고 반전이었지만, 그것과 연계된 교차된 이야기는 또한 감동까지 함께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흡족한 마음으로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아슬아슬한 세이프라는 느낌이랄까. 사실 명성에 비해 실망을 많이 한 것도 사실이다. 워낙 기대치가 높았던 탓일까? 그러나 그렇다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보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하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접하고 싶은 생각이 들은 것이다. 완벽하게 마음에 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매직은 아니었지만, 다른 작품 속에서라면 내 마음을 사로잡을 매직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