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도 - 지금 여기 우리의 모습들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수라도』는 이현이라는 낯선 작가의 첫 소설집이다. 민음사라는 믿음직한 출판사에서 출간이 되었지만, 왠지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그 이유는 비단 이 작품이 처녀작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작가의 아우가 그 유명한 이문열 작가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가장 많은 인지도를 가지고 뛰어난 문장력을 소유한 이문열 작가의 친형이 쓴 소설집이라니. 아무리 1988년 『문학사상』에서 등단을 한 작가라고 해도 아우만한 형이지는 않지 않을까 싶었다. 아우의 이름 때문에 민음사에서 출간을 결정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 불안감은 모조리 기우였음이 밝혀졌다. 글은 결코 가볍지도 재미없지도 않았다. 지루하고 난해한 작품일 것이라는 예상도 빗나갔다. 대화 중심의 단편들이어서 그런지 잘 넘어갔고 우스운 장면들도 있었고 생각해 볼 거리도 많았다. 아주 뛰어난 명작의 반열은 물론 아니겠지만, 한번쯤 읽어볼만한 누군가에게 권해볼만한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난 어느새 이문열 작가의 형이라는 타이틀은 잊은 채, 작품에 몰입해서 읽었다.
「수라도」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 「수라도」는 단편이 아니라 중편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흥미롭게 짜여 있어 빠르게 읽힌다. 수라도의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주인공이 기거하게 된 불암사라는 배경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주인공의 사회이다. 출판사와 인쇄소를 비롯한 사회가 두 번째 수라도인 것이다. 언뜻 보기에 불암사라는 공간은 적요하고 안정된 공간일 듯 보인다. 속세의 다툼 따위는 있지 않을 것 같은 공간 말이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 때문에 이야기는 흥미롭다. 사실, 속세의 다툼의 모습이 수라도라는 점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이를 그린 소설도 많다. 그러나 이 중편은 절과 속세를 중첩해서 다룸으로써 이야기를 풍성하고 더욱 새롭게 그리고 있다. 현실이나 절간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사는 어디나 같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또한, 이 작가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점은 행동이나 생각이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가 주가 된다는 것이다. 작품의 메시지나 캐릭터들의 의견도 전부 장광설이라 할 수 있는 한 페이지를 넘겨버리는 대화의 홍수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쉽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고 또 잘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희곡 같은 느낌도 든다. 희곡으로 만들어도 좋을 뻔한 구성이다. 그 대신 소설만의 미적 구성을 포기했다는 느낌도 받지만, 다른 소설에서 볼 수 없는 이 작품집만의 독특한 개성으로 본다면 보기에 나쁘지 않다.
「시선(施善)에 대하여」
앞의 중편 「수라도」도 그렇지만, 이 작품들의 제목은 한자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수라도(修羅道)라는 제목의 책이 이미 있었기 때문에 수라도(修羅圖)라는 제목으로 표기했다고 하는데 이 단편은 ‘시선’이 우리가 흔히 어떤 곳을 볼 때 지칭하는 시선이라는 단어로 읽히지만 한자의 뜻을 살펴보면 선을 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은 그 두 개의 뜻을 모두 포함해도 좋을만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참으로 적절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MBC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과연 읽어보니 영상화하기 딱 좋을 작품이었다. 영상적으로 상상이 많이 되었고, 실제 영상으로 하는 게 소설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주기 딱 좋을 것 같았다. 딸 셋을 데리고 장님의 남자가 매일 길거리에서 구걸을 한다. 특히 딸아이들까지 손을 벌리고 있는 장면에서 매일 직장에 출근하는 주인공은 불편함을 느끼고 아이들을 학대하지 말라며 장님에게 말을 걸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아이들을 자유롭게 놔두는 대신, 그 날에 모자른 돈은 자신이 충당해 주기로 한 것이다. 이 소설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해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동전이나 지폐를 주는지. 어렸을 적부터 도덕적으로 배운 관습 때문인지, 진짜 선의 때문인지. 이 단편 역시 주인공과 장님의 대화 부분이 인상적이다. 도저히 장님의 말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대사들이 터져 나오지만(바로 작가의 말이라는 게 뻔히 느껴질 정도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상황 제시와 주제 때문에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대사를 깊이 음미해보게 된다.
「개와 맥주」
망해가는 회사. 부도나는 회사에서 허울 좋은 자리에 있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사람이 아니라 개로 취급받는, 혹은 개로 불리는 사람의 모습이 우리들의 자화상과 겹쳐 보인다. 실제 이런 일들이 충분히 있음직한 것을 소설로 써내는 작가의 능력이 탁월하다. 재미있게 읽히고 내용들도 흥미롭다. 「수라도」의 회사 부도 장면을 또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다룬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작품은 긴 대사는 나오지 않는 편이고 상황들이나 대사들이 유쾌하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많다. 개 취급을 받는 주인공의 모습도 우울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흥미를 끈다. 끝맺음도 인상적이었던 단편이다.
「입석」
「입석」은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 남자가 어느 날, 예매를 하지 않아서 입석표로 기차를 탄 내용이다. 특실에서 서 있다가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핀잔을 듣고 역 관계자들에게 강제로 쫓기면서 우스꽝스런 모습을 연출한다. 주인공은 울분을 터트리지만 합리적인 시스템을 이용하지 않은 주인공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여객전무의 말은 작가의 메시지를 반영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배경 상황이 주가 되긴 하지만 그보다는 역시 주인공이 대화하는 두 세 사람의 말로 소설을 이끌어가는 느낌이다.
「노조 탄생」
「노조 탄생」은 일단 주인공이 관찰자 신분이다. 창문 너머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거기에는 학교 관리인과 수위, 급사 등 세 사람이 운동장에 배구대를 옮겨 심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일이 아닌 것을 시키는 학교 측에 반발하며 건성으로 일하고 돈만 축내려 든다. 자신들이 노조를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은 학교에서는 그들에게 분노를 하는데, 이 소설 역시 이쯤에서 터져 나오는 대사들이 소설 전체를 웅변해준다. 관찰자는 독자의 시점처럼 분노를 느끼고 한탄하지만 이야기에 끼어들지는 않는다. 독자나 작가의 입장에 위치한 것이다. 재미있는 단편이었다. 마지막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의 행동들도 유쾌하고 인상적이었다.
「대미」
「대미」는 어느 날 우연히 옛 동창을 만나서 소설가의 꿈을 꾸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주인공과 아내는 우둔하게 그려져 있어서 굉장히 풍자적이고 재미있었다. 마지막은 좀 꽁트적인 느낌도 들었지만 거기까지 이끌어가는 솜씨가 상당했다고 할까? 소설 속 작가가 쓰는 이야기는 소설 속 캐릭터의 과거인데 그 과거를 들추어내는 구성도 이야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었고, 우스운 제목이나 어리석은 꿈들을 볼 때면 어이없는 웃음까지 나오는 작품이었다. 앞의 나온 작품들과는 약간 느낌이 다른 작품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뒤편의 해설에서도 「대미」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아무래도 작품 색깔이 다르고 메시지도 깊지 않고 하나의 꽁트 같은 느낌이 드는 소품격 단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힘을 빼고 쓴 단편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었다. 사회적 시스템에 인상을 찌푸릴 필요도 없고 캐릭터가 아닌 작가가 직접 말하는 듯한 웅변톤의 장광설의 대사를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어설프게 무언가가 되겠다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것 같은 이 소설을 밝은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현을 이현으로 바라보기
처음에 가졌던 우려는 전부 사라졌다. 이 단편집을 읽고 나서는 이 작가를 꼭 아우와 같이 묶어야 할 필요성이 없다고 느꼈다. 이현은 이현이고 이문열은 이문열인 것이다. 둘은 작품 색깔도 메시지도 전혀 다르다. 그리고 독자로서 각각의 작품을 개별적으로 읽고 싶다. 어느 한편에 기대어서 책이 나왔다는 것은 우려였다. 이현은 충분히 자기만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선보일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비록 작가가 직접 말하는 듯한 몇몇 씬들은 거슬리기도 했고 전체적인 구성이 안이하게 짜인 느낌은 들었지만, 그가 재현해낸 수라도의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본질적인 모습이기에 친숙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싶은 흥미가 생겼다. 책 머리에서 작가는 아직 이 십편 가량의 작품이 남아있고 실랑이질을 더 해서 또 내놓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다. 처음에 읽을 때는 내놓지 않는 게 나을 것 같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뒤에는 그 이야기들도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이렇게 직접적인 우리 삶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을 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지만, 또한 이런 전통적인 소설 이야기가 그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이현의 소설들은 더욱 새롭게 읽히고 재미있다. 작가의 메시지를 배제하고 독자가 스스로 질문에 답을 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소설들이었다. 이문열처럼 운율이 느껴지는 흡인력 있는 문장들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잘 쓰였고 읽기 쉽고 솜씨 있고 빠져드는 문장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었다. 인물들도 다양했고 속물 같은 캐릭터들도 잘 살려냈다. 괜찮게 재미있게 읽은 만큼 다 읽고 나서 바로 친구에게 빌려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마음에 들 것이라 기대하며.
이현이 바라보는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세계의 수라도를 그는 진중하게 때론 우스꽝스럽게 때론 담담하게 지켜보고 있다. 그가 가진 돋보기로 바라보는 세상은 자뭇 흥미롭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뻔한 모습들인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살펴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화두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해서?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상황을 고치기 위해서? 이유야 어떻든 간에 이 책이 읽는 즐거움을 주고 생각할 거리를 주고 삶의 이면을 비쳐주는 것만은 틀림이 없다. 지금 여기, 우리의 수라도를 작가 이현은 또 글로 그리고 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그 모습이 세상에 나오는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