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아홉 냥
고양이. 신비로운 동물 중 하나이다. 마녀를 떠올릴 때 빼 놓을 수 없는 동물이며 각종 장르문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세 번째 소재별 단편집의 소재는 바로 이 고양이다. 금방이라도 세계의 경계를 넘나들 것 같은 매력적인 고양이를 다룬 아홉 편의 이야기가 이 앤솔러지에 수록되어 있다. 장르와 만난 아홉 마리의 고양이 이야기가 이 한 권의 책 속에 담겨 있다.
흔히 아홉 가지 목숨을 가졌다고 하는 고양이의 아홉 빛깔 이야기.
나는 그들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여자가 혀를 크게 찼다.
“쯧. 생각보다 더 모자란 놈이로구나. 시간이 없으니 할 수 없지. 냉큼 따라오거라.”
“예?”(15p)
첫 번째 실린 단편은 작가 아스칼라이(이수현)의 단편이다. 제4회 한국판타지문학상에서 장편 『패러노말 마스터』가 우수상을 수상했다. 웹진 거울의 창간호부터 필진으로 참여해왔고 번역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어슐러 K. 르귄의 헤인 연작 등이 있다.
이 단편은 주인공인 민의 친구 P의 집에서 고양이 상 하나를 우연찮게 가져오면서 시작된다. 사흘간의 프로젝트가 끝나고 집에서 잠에 들려는 순간, 민의 곁에 고양이 여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민을 어디론가로 데려가는 것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이야기는 복잡한 구조를 취하지 않고 캐릭터들도 단순한 면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심심한 작품이었다. 초반을 조금만 읽어도 결말이 예상된다고 할까? 잘 읽혔지만, 조금은 독자의 예상을 벗어났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아쉬운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기대감이 고조되기도 했지만, 후반부에는 기대감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면이 있었다.
콘월의 고양이
TV 생중계로 경기를 보는 도중에 우리는 이미 꼭지가 돌 정도로 취해 있었고, 역전 골과 함게 아스날의 승리가 결정되자 모두 거리로 뛰쳐나갔다. 예이, 반 페르시! 예이!
아무것도 기억나진 않지만, 스티브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를 친 건 나였다. 맥주에 취하고 아스날의 승리에 취할 대로 취한 내가 달려보자며 낡아빠진 캠리를 몰고 나왔다.(40p)
두 번째 단편은 예전에 환타지문화웹진 워터가이드를 운영했던 선장 분 중 한 분인 crazyjam의 작품이다. 배경이나 주인공이 한국이 아닌 영국을 다루고 있는데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나 전체적으로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주인공이 축구를 좋아하는 캐릭터인데(영국이니 당연할지도) 나 역시 축구를 좋아하여 자주 축구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들이 왠지 공감이 갔던 캐릭터다.
주인공인 케네스 스튜어트는 외숙부에게 유산을 상속받는다. 그리고 사고를 치고 상속 받게 될 저택으로 잠시 피신을 가면서 소설 내용이 이어진다. 저택과 토지를 상속 받으려면 외숙부가 키우던 고양이가 죽은 이후에나 가능하다. 주인공은 고양이에게 심상찮은 것을 느끼게 되는데……. 이야기가 뻔하게 진행될 수 있는 것을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끝에 여운이 남게 만들었다. 어느 한 쪽으로 결론 내리지 않게 처리하는 솜씨가 좋았던 작품이었다.
고양이 플롯
아내는 잘 나가는 의사였다. 그는 그렇지가 못했다. 3년 전에 그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주식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5천만 원을 해 먹었다.(75p)
SF 소설가 배명훈의 작품인 「고양이 플롯」은 분량도 적당하고 이야기의 몰입감도 상당한 소설이다. 처음에는 의사 아내에 주식으로 돈 말아먹은 백수 남편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80페이지부터 이야기는 본격적인 장르 소설로 들어간다. “모든 일은 그가 회사에서 중국 항천과기집단공사(航天科技集團公司)의 용역 일을 하던 중에 얻은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어느 날 그는 달 탐사선 창어가 찍은 달 표면 사진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도저히 자연물이라고 보기 어려운 윤곽 하나를 발견했다.”(80~81p)
작가는 교묘하게 이집트 신화와 달에서 찍힌 문양을 연관시키면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야기를 능숙하게 이끌어 간다. 읽으면서 계속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흥미를 가지게 되는데, 여러 미스터리가 풀리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으로 갈수록 조금 혼란스럽다는 느낌도 받게 된다. 지나치게 축약되고 한 번에 설명이 몰아진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며 이 단편집 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편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나는 고양이와 같이 살고 있다
이 단편은 첫 번째 단편을 실었던 아스칼라이의 두 번째 단편이다. 분량은 앞의 단편에 반 밖에 안 되어 보였지만 훨씬 개성적이고 깔끔한 글이었다. 다만 분량 때문에 소품으로 읽히기는 한다.
“어 그거…… 놔둬.”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나는 마지못해서 말했다.
“고양이 때문에…….”
“고양이? 고양이를 얻어왔어? 네가? 어디?”
은하는 눈을 크게 뜨고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밥만 줄 뿐이지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아.”
“아하. 도둑고양이와 친해지셨단 말이지? 어쩐지. 그래도 대단한 발전인데?”(132p)
주인공은 살아있는 것이라면 전부 다 무서워한다. 따라서 고양이 같은 동물도 쉽사리 키울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우유까지 주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상상력이 빚어낸 특별한 고양이와 주인공의 동거 이야기.
슈뢰딩거의 고양이
『둔갑팬더』등을 쓴 작가 김몽의 작품이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고양이 중 하나일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재했던 실험이 아니라 물리학자들 사이의 가상의 논쟁이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실제로 실험을 감행한다. 네 장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이야기로 적당히 읽을 만한 소품.
엄마는 고양이야
제1회 이매진 단편 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나하의 거울」을 쓴 작가 가는 달의 작품이다. 고양이들의 시점으로 쓰인 이 작품은 자신들의 엄마가 고양이가 아니라는 동생과 고양이가 맞다고 말하는 형의 재미난 말다툼을 다룬 짧은 분량의 소품이다. 세 장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리게 하는 귀여운 이야기.
그녀에게 새 애인이 생겼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 깔깔 거리는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닮아서란 말이지? 인간들이란. 저 남자가 옛날 남자와 어디 비슷한 냄새라도 나느냔 말이다.(167p)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편집장인 가연의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세 장 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의 소품이다. 또한 고양의 시점에서 쓴 작품이기도 하다. 약간은 환상적인 작품이라 고양이가 말을 알아듣고 핸드폰을 누르기까지 한다. 앞 작품과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귀여운 작품이었다.
용은 우리 마음속에
우리는 모두 고양이가 본디 어떤 존재였는지 알고 있다. 그들은 그 옛날 몸에 철갑을 두르고 남산 위가 아니라 저 하늘 위에서 바람서리는 물론이고 천둥번개를 일으키며 군림하고 있었다.(173p)
웹진 크로스로드에 「지구의 아이들에게」를 개제하고 환상문학 웹진 거울에 장편 『코뉴코피아』를 연재하고 있는 정희자의 작품이다. 고양이들이 본래는 용으로 살아갔으나 세속의 행복에 물들어 우유를 핥아먹고 살다가 현재는 고양이 세수나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은 고양이들이 예전에 용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수련을 하는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이런 어리석은 부분들이 또한 용들과 비슷한 부분일 듯도 했다.) 작가는 이 작품의 발상이 『톨킨의 환상서가』(황금가지, 윌리엄 모리스 외, 더글러스 A. 앤더슨 엮음, 김정미 옮김, 2005년 6월 27일)에 수록된 이디스 네스빗의 「용 조련사들」이라는 단편에서 착상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실제로 「용 조련사들」을 세트로 읽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마치 프리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태양의 서쪽 달의 동쪽
뭐? 고양이를 기른다고? 하! 고양이가 잠시 머물러주는 거겠지.(199p)
이 단편은 CASS Lemon의 작품이다. 제목은 동화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내용 구성도 유사하게 짜여져 있다. 처음에는 역시 고양이의 매력이 드러나는 작품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단편이 한 편의 멋진 풍자 소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회 문제를 환상 문학으로 표현했다고 할까? 근사하게 읽었고 충분히 만족스러웠던 작품 중 하나였다.
리뷰를 마치며
이렇게 다양한 아홉 가지의 고양이들을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지나치게 시간이 짧았다는 점일까. 기존에 앤솔러지에 비해 분량이 얇았고 그만큼 수록되어 있는 작품들도 단편이라기보다는 장편(掌篇)이 많았다. 아무래도 분량이 길어질수록 읽는 재미가 생기고 작품에 몰입감이 더 커진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아쉬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리뷰를 적기에도 짧은 이야기들에는 할 말이 더 줄어들었다.
좀더 다양한 배경 속의 고양이들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특히 앞에서 흡혈귀 앤솔러지인 『혈중환상농도13%』와 외계인 앤솔러지인 『제15종 근접조우』에 비해 지나치게 허술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 점들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한 자리에서 쭉 읽을 수 있는 여전히 매력적인 책이다.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 중에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구입해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네 번째 앤솔러지는 이번 보다 더 멋진 단편들로 두툼한 책으로 완성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 이 글은 환상문학웹진 거울 62호 국내 소설 리뷰란에도 올라가 있습니다.